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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준만 교수(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따라해보기 _03 (문화지체)
    WrItInG/ReLiGiOn 2014. 11. 5. 11:29

    한국개신교회의 문화지체

     

    산업혁명 이후 문화의 물질적인 측면들의 발달이 비물질적인(정신적인) 측면들보다 훨씬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 하다. 
    현재는 이러한 문화지체가 훨씬 심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화하기 위한 물질적인 기술이 없었다면, 현재는 기술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정도로 이미 앞서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현실적인 한계로 간접민주주의에 국한되었으나, 현재는 스마트폰 등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문화지체를 보다 심화시키는 요인들이 있었다. 
    일제식민지치하, 한국전쟁 등으로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과거 역사적 전통과의 심각한 단절(역사지체)이 있었고, 압축성장 과정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시되면서 정신적인 문화측면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 현재에도 경제성장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이다. 최근에 인문학에 대한 재조명과 관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나, 대학에서 인문학과가 통폐합되어 축소되고, 고등학생들은 이공계로 진학하려고 한다. 이렇게 물질적인 문화측면은 압축성장하였지만, 비물질적인 측면은 단절되면서, 어느 사회보다 둘 간의 간격이 크게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비동시성의 동시성'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하다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세대간의 갈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외계인 취급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정하고 있다. 상호 이해와 인정이 없는 갈등과 반목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개신교회에서도 여과없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되고, 강화되고 있다. 

    강준만 교수가 '연고주의'를 과거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지적하면서 언급한 KDI의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망 가입 비율은 동창회(50.4%) 다음이 바로 종교단체(24.7%)이다.  

    현실세계와는 가장 거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정신적인 가치 중 영적인 가치를 다루는 종교인 엘리트들 관계에도 출신교단, 출신학교, 출신교회가 아주 중요하고, 한국개신교회 내부에서는 더 나아가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에 비유될 수 있는 현실이 회자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이 시작되었고, 이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불행히도 삼강오륜(三綱五倫) 중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붕우유신(朋友有信)의 가치보다는 삼강(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과 함께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만 왜곡되어 강조된다. 즉 친함, 의로움, 믿음 보다는 일방적인 섬김, 구별, 차례만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조된다.  이는 유교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으로 알 수 있다. 

    개신교(改新敎)는 한자어로 '새롭게 고친다', 또는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Protestantism의 번역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자', '항의하는 자'인 protestant에서 나온 단어이다. 하지만 한국개신교회는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전통가치인 유교적인 가치를 잘 계승하고 보호하고 있다. 
    한국개신교회의 종교적 엘리트층은 교회 내에서 임금, 연장자, 아비, 남편이다. 섬기고 복종해야 하는 윗사람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유교사상의 왜곡된 측면들이 한국개신교회에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에서는 명칭과는 다르게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하는 반성이나 재해석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종교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특유의 구습을 답습하는 경우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기복신앙이다. 한국개신교회에서 무한히 강조하는 은혜는 내세의 영혼구원에서 시작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세에서의 물질적, 비물질적 복으로 끝맺는다. 

    예배, 헌금, 교회봉사활동 등의 종교적인 활동은 일반적으로 복, 즉 경제적인 부, 건강, 안전과 안정, 자녀들이 잘(?) 됨의 보답을 기대와 맞물려 있는데, 이는 한국개신교회가 들어오기 전부터의 대부분의 종교적 활동과 맞물려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임신을 위해, 멀리 떠난 가족의 안녕을 위해, 아픈 가족의 건강회복을 위해 정화수 떠 놓고 새벽에 기도하거나 굿을 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매도한다면, 과연 기도하는 대상의 문제인지, 내용의 문제인지 고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내용은 과거의 답습이다. 

    물론 봉건왕조사회에서 자유민주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한국개신교회가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정권세습, 재벌기업의 경영세습 등이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개신교회는 변화의 주체나 선구자가 아니라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여전히 직업군에서 여성이 하위직이나 단순직에 머물고 있다는, 성적인 차별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회적인 비판에도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미래 국가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는 비판에도 그러하다. 

    이런 상태에서 종교인 공동체로서의 한국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물론 논어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가치처럼 과거 전통이 모두 잘못되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가치에 대한 반성, 재해석 및 적용이 없이 답습, 악용하고 있고, 이러한 현실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정치, 경제, 예술, 학문도 모두 돈벌이 수단이지만, 종교 또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는 것은 한국개신교회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그 어떤 행동의 의지를 가다듬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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