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 민음사, 2013)독서 2014. 7. 15. 17:06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48가지나 되는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각각 그림과 소설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 자체가
감정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관심이 없으며, 억압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IQ 대신 EQ가, 전문성보다는 창의성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조금씩 강조되며, 가치가 이동하고 있는 현시대에서
이성을 출발점으로 하는 철학의 세계에서 '감정의 윤리학'을 거의 유일하게 피력한 철학자 스피노자를 소개함과
또한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소개한 각각의 감정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왕'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독자에게, 학생에게 조언까지 곁들이는, 아주 방대한 양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것에 감탄할 수 있다.
특히나 감정에 너무나 서투른 한국사회에서, 다른 누구의 판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내리는 평가 기준을 강조하는 저자의 지적(p.513~514)이 담긴 에필로그는 감동적이다.
이러한 감탄과 함께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특정 독자들은 개별적인 감정 부분에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부족함 뿐만 아니라 방향이나 해석이 전혀 다를 수도 있을 법도 하다.
목차부터 그러하다.
48가지 감정들을 네 개의 부(1부 땅의 속삭임, 2부 물의 노래, 3부 불꽃처럼, 4부 바람의 흔적)로 나누어 배치하면서
가스통 바슐라르를 언급하면서 각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p.25),
단지 알파벳 순서대로 감정을 나열하고, 12개씩 묶어서 끊은 것이라는 느낌 밖에 없다.
차라리 분류와 묶음을 솔직하게 독자들에게 맡기든지, 아니면 저자가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을 보여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분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최소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그것에 신경쓰지 않고 책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또한 감정을 강조하고 집중하지만, 예술이 그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감정을 정확히 식별하고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했던, 즉 '머리로' 알아가고자 했던 것 자체가 태생적인 모순인 듯 하다.
결국 인간의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감정 자체를 대상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해한 감정은 느낌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이 한 개인에게서도 확실히 구분될 수 없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를 이해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문화와 제도를 이해하는 지평을 넓히는 데 아주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어짜피 선악도, 좋고 나쁨(싫음)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간단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단순한 인간은 없다.
48가지의 그림과 48권의 소설을 소개한 것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며, 이는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그림 하나하나는 책의 내용을 보기 전에 훑어 볼 때와 내용을 읽고 볼 때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
느낌, 즉 감정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는 단순히 머리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끼도록(생기도록) 무던히 애쓴 결과라 하겠다.
물론 소개된 소설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쉬움이 있다면, 4폭의 한국 화가의 그림을 제외하면, 소설에는 전혀 한국 소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기로라도 한국 소설을 찾아서 각 감정에따라 분류하고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하여튼
무엇보다도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겠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2010) (0) 2014.10.20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강준만, 2014) (0) 2014.10.16 죽음의 수용소에서 (Victor. E. Frankl) (0) 2014.07.03 모택동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살림지식총서)(362) (0) 2011.05.17 바보가 바보들에게 (2) 2011.02.16